전동 그리퍼 시장은 로봇 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AI와 융합된 로봇 엔드이펙터 기술은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세 속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동 그리퍼, 나아가 차세대 AI 그리퍼 개발에 도전하는 (주)씬그립을 취재했다.

(주)씬그립 하영열 대표이사 / 사진. 로봇기술
전동 그리퍼 시장 개화
전동 그리퍼 시장의 확장세가 눈에 띈다. 시장 조사 기업 프리시던스리서치(Precedence Research)가 2025년 9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동 그리퍼 시장은 지난 2024년 12억 4천만 달러로 추산되며, 오는 2034년까지 10.34%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동 그리퍼는 시장 초기 높은 가격으로 성장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자동화 및 협동로봇 수요의 증가에 힘입어 점차 적용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현대 제조업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 데이터 기반 공장 자동화 조성이 유리하고, 센서와 AI 기술을 융합해 힘 조절이나 물체 인식, 예측 유지보수 등 더욱 고도화된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 자동화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전동 그리퍼에 대한 수요 증가로 공압 그리퍼 시장에서 강세를 보여 온 주요 메이커들이 잇따라 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으며, 스마트 그리퍼를 겨냥한 신생 스타트업의 등장도 가속화되고 있다.
대전에 본사를 둔 (주)씬그립(이하 씬그립) 또한 그중 하나다. 씬그립 하영열 대표이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조선사에서 20년 이상 로봇 제어기를 개발하고,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비정형화된 작업을 로봇으로 자동화해야 하는 조선업 특성상 다양한 로봇 응용 기술을 개발하며 기술 기반을 다진 그는 이후 시추선, 자율운항선박 등 대형 프로젝트까지 참여하면서 전 세계의 우수한 메카트로닉스 기술과 부품을 경험했다.
하영열 대표이사는 “협동로봇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면서, 협동로봇에 적합한 전동 그리퍼를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씬그립은 로봇의 역할을 결정짓는 두 가지 핵심 요소인 보는 것(See)과 잡는 방식(Grip)을 의미하는 사명이다. 하영열 대표이사는 “산업용 로봇은 조금만 작업 환경이 바뀌어도 일을 하지 못한다. 씬그립은 로봇이 환경을 인지해서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전동 그리퍼는 이를 위한 첫 번째 아이템이다.”라고 설명했다.

(주)씬그립 제품들 / 사진. 로봇기술
독자적인 전동 그리퍼 구조 설계
“전동 그리퍼는 일견 공압 그리퍼 대비 가격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설비 운용 측면에서 오히려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주요 엔드유저들 또한 이 같은 이유로 전동 그리퍼로의 전환에 관심을 보이는 만큼, 시장 잠재성 또한 높다.”라며 전동 그리퍼 시장에 확신을 가졌던 하영열 대표이사는 2023년 9월 씬그립을 설립하고 곧바로 2023 로보월드에 참가해 개발했던 전동 그리퍼 프로토 타입을 출품했다. 신생업체임에도 시장의 여타 전동 그리퍼와 다른 독특한 구조로 관심을 모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 실적도 발생했다. 그는 “2023년 9월 창업해 2024년 초부터 직접적인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아웃바운드 영업을 할 여력이 없었음에도 입소문을 통해 먼저 우리 전동 그리퍼를 찾는 고객들이 생겼다.”라고 전했다.
씬그립 전동 그리퍼의 가장 큰 장점은, 내부 부품 수를 최소화한 설계로 동급 사양 제품 대비 절반 수준으로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부품 수가 줄면서 무게 또한 가벼워져 로봇 페이로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정밀한 힘 조절과 낮은 오차 범위를 구현했다.
핵심은 하영열 대표이사가 직접 고안한 특수한 형태의 웜 휠 구조에 있다. 이 부품은 기어 증폭부 대신 모터에서 직접 파지력을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가공 난이도가 높아 양산이 쉽지 않았다. 그는 “처음 제품을 디자인하고 전국의 임가공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업체들로부터 거절을 당하다 모 임가공 업체가 생산을 도와줬는데, 반나절 동안 가공한 부품이 고작 4개에 불과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영열 대표이사는 해당 부품 생산만을 위한 전용 장비를 개발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오로지 이 부품 생산만을 위한 맞춤 생산설비를 구축하자 본격적인 양산이 가능해지면서 납기는 물론 품질 검수까지 꼼꼼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주)씬그립 제품들 / 사진. 로봇기술
핵심 부품 양산 문제가 해결되면서 비즈니스도 점차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의 미래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2024년에는 외부 투자를 유치했고, 올해 더 많아진 인원과 로봇 데모 및 생산 장비를 수용하기 위해 본사도 3배가량 확장된 공간으로 이전했다. 제품 라인업 또한 고도의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를 위한 옵티멈 시리즈와 전동 그리퍼 필수 기능을 모두 갖추면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에센셜 시리즈, 그리고 낮은 가반하중 로봇에 적합한 경량 타입의 이코노미 시리즈까지 완성했다.
이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제조업의 AI 전환을 위한 차세대 AI 그리퍼를 시장에 선보인다.
피지컬AI를 위한 AI 그리퍼
씬그립은 올해 전동 그리퍼 시장에서의 양산 경험과 노하우로 제조 AX 분야에 출사표를 던졌다. 회사는 오는 12월 3일(수)부터 6일(토)까지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로봇 박람회 중 하나인 iREX 2026 현장에 직접 참가해 자사가 개발한 AI 그리퍼와 데모 시스템을 공개한다.
하영열 대표이사는 “우리는 처음부터 환경이 바뀌어도 로봇이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고, AI 그리퍼 또한 그중 하나”라고 개발 배경을 밝혔다.

직접 손으로 그리퍼를 학습시키는 AI 그리퍼 / 사진. 로봇기술
씬그립은 올해 초 허깅페이스가 개최한 르로봇(LeRobot) 해커톤 대회에 참가해 서울 대표로 전 세계 피지컬AI 연구자들과 겨뤘다. 전 세계 44개국 3,000여 명이 참가한 이 피지컬AI 대회에서 하영열 대표이사와 한남대학교 우상혁 교수,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김병수 교수로 구성된 팀 ‘SeeNGrip & Big Bros’는 AI 로봇 팔을 이용해 시각 인식 및 정밀 조립을 하는 시연으로 세계 순위 8위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참가 기업 가장 높은 등수이자, 한국의 피지컬AI 기술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
하영열 대표이사는 “피지컬AI를 실현하려면 AI와 함께 로봇, 비전, 제어, 메카트로닉스와 같은 여러 기술이 필요한 만큼, 우리 기술로도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올해 르로봇 해커톤 대회는 이 시장에서 우리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자리였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씬그립은 전동 그리퍼뿐 아니라 툴 체인저, 전동흡착 등 산업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전기식 로봇 엔드 이펙터 전문 기업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며 “AI 기반 모방학습을 돕는 사용 편의성을 더해, 향후 ‘로봇 엔드 이펙터 하면 씬그립’이란 말이 자연스러운 브랜드가 되도록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