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전자소자를 유독한 유기 용매공정 없이 친환경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 김범준 교수와 고려대학교 우한영 교수 연구팀이 공동연구를 통해 물 기반 친환경 공정기술로 만들 수 있는 고성능 유기 태양전지 및 유기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다고 한국연구재단은 밝혔다.
유기 태양전지, 유기 트랜지스터와 같은 유기 전자소자는 유연하고 가벼운 특성, 저렴한 인쇄공정 등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소재의 소수성으로 인해 주로 클로로포름, 톨루엔 등의 유해한 유기용매를 사용해야 제작할 수 있으며 그 유독성 때문에 실제 상업화 공정에 적용될 수 없었다.
또한 현재까지 개발된 고성능 전도성 유기 소재들은 물과 같은 친환경 용매에는 전혀 녹지 않으므로 용액공정이 불가능했다. 최근에 연구된 친수성의 고성능 전도성 소재들도 용해도가 낮아 공정이 어렵거나, 용해된다고 해도 소자 성능이 현저히 낮아 한계가 있다.
이에 연구팀은 물과 에탄올로 구성된 혼합용액에 잘 녹는 친수성 고성능 전도성 유기 소재를 개발했다. 이를 기반으로 수용액 공정에서 유기 태양전지와 유기 트랜지스터를 개발했을 때 높은 광전변환 효율과 전하 이동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우수한 대기 안정성도 확인됐다.
이번에 개발된 소재는 올리고에틸렌글리콜 곁사슬을 포함한다. 연구팀은 이 소재가 순수한 물이나 순수한 에탄올에서 거의 녹지 않지만, 시중에 파는 술(럼주)과 같은 물-에탄올 혼합 용매에서 용해도가 130배나 향상되는 점에 착안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전 공정에 걸쳐 유독한 유기 용매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박막 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유해물질 차단 장비(글로브 박스)가 불필요하고 작업자 친화적으로 소자 제작이 가능해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김범준 교수는 “이 연구는 지속가능한 인체·환경 친화적인 공정 기술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일”이라며 “앞으로 유기 전자소자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기술의 실제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연구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이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 글로벌프론티어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스(Advanced Energy Materials)’ 12월 5일자에 게재됐다. 또한, 연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표지논문(Cover Image)으로도 선정됐다.

물-에탄올 혼합액에서 개발된 고분자 소재의 용해도 향상
이번에 개발된 고분자 소재는 에탄올, 물보다도 시중에서 구입이 가능한 럼주(바카디 151)에서 가장 잘 녹았다. 이 럼주는 물과 에탄올이 50:50 몰 비율로 혼합돼 있다. 이는 개발된 물-에탄올 공정의 인체 및 환경 친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사진. 한국연구재단).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스 표지논문 이미지 선정
커버 이미지 내용은 인체 및 환경 친화적 공정으로 개발된 유기 전자소자를 의미한다(사진. 한국연구재단).
★ 연구 이야기 ★
Q. 이번 성과는 기존과 무엇이 다른가.
A. 물 혹은 에탄올 용매공정 기반의 유기 태양전지의 광전효율은 최근까지도 0.04%에 불과했다. 유기 태양전지가 연구된 지 30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관련 연구가 얼마나 도전적이고 미흡했는지 알 수 있다.
고무적이게도 이번 연구에서는 50배 정도 향상된 세계 최고 수준의 2.05% 광전변환 효율을 구현했다. 물 혹은 에탄올 용해성 소재로 유기 태양전지를 제작하는 것이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면, 이번 연구 성과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수용액을 사용한 친환경 유기 태양전지 제조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도유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Q. 실용화를 위한 과제는.
A. 실제 상용화를 위해 다른 어려움은 크게 없을 것이라 예상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과제 한 가지는 유기 전자소자 성능을 최대치로 향상시켜 상용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Q. 기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이 연구 성과는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얻어졌다. 우리 연구원의 친환경 유기 전자소자 프로젝트는 에탄올을 공정용매로 활용해서 소자를 제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러다가 시중에서 파는 술로 유기 전자소자를 제작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고 결국, 바카디 럼주로 실제로 잘 작동하는 태양전지를 제작할 수 있었다.
실험이 모두 끝난 뒤에 우연히 발견한 사실은 바카디 럼주에서 전도성 소재의 용해도가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기존에 활용했던 순수 에탄올의 경우 상온에 조금만 둬도 전도성 소재가 석출되기 시작하는데, 바카디 럼주의 용액의 경우 수 일이 지난 후에도 소재들이 잘 녹아있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러한 우연한 관찰로부터 향상된 용해도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럼주에 포함된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추정해 관련 물-에탄올 용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