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혁신이나 디지털 전환 등으로 표현되는 디지털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혁신은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기존 사업모델의 변화를 촉진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디지털 혁신은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기업에 해당하는 트렌드로 인식하기 쉽지만, 전통 산업 중 하나인 소재 산업에서도 디지털화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소재산업의 연구 개발 단계에서는물질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여 신소재 개발이 더욱쉬워질 것으로 예상되며 생산 단계에선 IoT를 통해 얻어진 많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획기적인 원가 절감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판매 단계에서는 고객이 소재를 어떻게활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솔루션까지 함께 제공하는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기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디지털 혁명의 기존 산업 모델에 대한 파괴력
최근 디지털 혁신이나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등으로 표현되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혁신은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등 디지털 기술을활용하여 기존 사업 모델의 변화를 촉진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는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2017년에 발표된 세계경제포럼의 ‘디지털 전환 이니셔티브’보고서에서는 인공지능, 자율주행, 빅데이터 및 클라우드, 고객 맞춤형 제조/3D 프린팅, IoT, 로봇/드론, 소셜미디어/플랫폼 등의 기술들을 주목하고 이들 기술로 모든 산업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으로 인한 변화는 이미 애플이나 구글 등의 기업을 통해 많이 알려졌고, 또한최근 우버나 에어비엔비 같은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운송업이나 숙박업 같은 기존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은 전통 소재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들어서 전통 소재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등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디지털 혁신은 전통 소재 기업들의 생산성 개선뿐만 아니라 기업의 밸류 체인 전반에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 개발 방식도 기존과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며 판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사업 모델도 획기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2016년 시행된 PwC의 화학기업 대상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75%가 향후 5년 안에 상당 수준의 화학 산업 디지털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으며 32%는 이미 상당 수준의 디지털화를 달성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의 디지털 전환 이니셔티브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 기업들의 94%가 디지털화를 통해 화학 산업이 획기적으로 변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응답 기업의 87%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할 것으로 전망했다.
혁신 소재의 연구 개발 기간 및 비용의 획기적인 단축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기술 등은 소재 기업의 연구개발 방식을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연구개발 방식은 수많은 반복적인 실험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하더라도 산업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소재를 개발한 다음 적합한 사용처를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 개발 방식은 장기간 수행되기 때문에 대부분 큰 규모의 기업내에서 이루어졌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 소요되는 특징이 있다.
최근 소재 기업들의 고객사들은 더 복잡한 성능 구현을 위해 소재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기술 교체 기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고객사들은 소재 기업들이 예전보다 더 짧은 기간내에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고객사들이 과거와 같이 소재가 개발돼서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고 요구성능을 매우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있어 기존의 연구 개발 방식으로는 고객사들에 대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소재 기업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재 정보학(Materials Informatics) 분야를 주목하고 있다. 소재 정보학은 화학 반응을 수학적 계산으로 예측하여 원하는 물질을 이론적으로 찾아가는 학문으로 연구개발 단계에서 소재 정보학을 활용하면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실험과정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소재 정보학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물질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것이 중요하다. 보다 많은 물질의 기본 정보 및 실험 정보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원하는 물성을 가진 소재를 찾아내기가 더욱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기에 기업들이 가진 정보들을 취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업들이 개발한 물질 정보는 중요 기업 비밀일 가능성이 높으며 기업 경쟁력의 원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정보를 외부 노출하지 않고 내부에서 활용하는 것보다 타 기업과 함께 취합해서 공동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필요하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정부 등 제3자가 나서서 물질 정보들을 취합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2011년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 계획을 발표한 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기존 소재 연구 개발 방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지하고 소재 게놈이니셔티브 계획을 세웠으며 연구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산학연 경계를 초월한 연구 개발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문화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실험, 계산, 이론을 통합하고 응용하기 위해 소재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소재 데이터를 모든 연구 개발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렇게 구축된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소재 개발 인력이 필요한데 정부는 관련 인력양성을 위한 구체 계획들까지 세워놓았다.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는 우선 정부 출연 연구소들을 위주로 추진하고 있으며 점차 기업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획기적 원가 절감 및 안전성 확보
일반적으로 소재 기업의 제품 생산 과정은 물질 반응, 정제, 분리 등 다양하고 복잡한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생산 과정에서 온도 등 다양한 변수들을 조절해야 한다. 다양한변수들을 실시간 감지해서 최적의 조건으로 조절하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들어 IoT에 기반을 두어 수천 개의 센서를 생산 공정에 부착하여 온도, 압력 등의 측정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분석할 수 있게 되고 딥러닝 기술을 통해 숙련된 기술자들의 경험을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정의 문제점들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 과정에서의 디지털화는 범용 소재부터 기능성 소재에 이르는 거의 모든 유형의 소재 기업들에 해당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많은 선진 기업이 생산과정에서의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을 중심으로 생산 현장에서의 데이터 수집 및 분석을 통해 안전을 강화하거나 제조 원가를 크게 낮추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성을 개선하고 있다. Showa Denko는 2015년 카와사키 생산 공장에 스마트 센서를 사용해서 실시간 운영 데이터를 얻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위험 상황을 빠르게 인지하고 불필요한 설비 보수를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Mitsubishi Chemical은 펌프나 송풍기 등 설비에 무선 센서를 부착하여 설비의 진동과 온도를 측정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설비 수리 및 교체의 최적 시점을 찾을 계획이다. 또한,
Mitsubishi Chemical은 Konica Minolta와 함께 적외선 카메라, 가시광 카메라 등을 사용하여 가스 누출 감시 시스템을 개발할 예정이며 NTT Communication 과 협력하여 딥러닝 기술을 통해 생산 제품의 품질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 외 다양한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생산 현장에서의 효율성 및 안전성을 제고할 예정이다.
고객 서비스 솔루션화를 통한 새로운 사업 모델 확대
디지털화는 소재 기업들의 사업 모델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소재기업들은 장기간의 연구 개발활동을 통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나서, 개발된 소재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판매해왔다. 그리고 판매 이후 실제 활용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소재 기업이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소재에 요구되는 기능들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소재 기업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소재 기업들이 소재를 단순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재가 활용되면서 고객에 주는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내고 그 가치를 극대화 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고객에 주는 가치에 근거한 사업 모델은, 고객과의 관계가 특히 중요한 정밀 화학 분야(예를 들면 수처리나 촉매 사업)를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소재가 활용되는 과정에 소재기업이 관여하면서 고객을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객별로 적정 가격을 책정하는 등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활용하여 매출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화학기업들의 매출 이익률이 약2~4%P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 및 기능성 소재 사업에서 솔루션 형태의 사업모델 출현으로 인해 2016~2025년 사이 약 1,100 ~ 2,500억 달러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혁신을 통해 화학기업들의 사업 방식이 연구개발부터 판매까지 모든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밸류 체인에서 확보되는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서 적기에 최적의 물질을 개발하고 고객에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지 솔루션을제안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 사업의 성공방식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재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위해 외부 기업과의 협력을 도모하기도 하지만 내재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역량을 확보하는 등 적극 대처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Mitsubishi Chemical Holdings는 2017년 4월에 CDO(Chief Digital Officer)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면서IBM Japan으로부터 전문가를 영입했다. 또한, 2020년까지 인공지능과 IoT 등에 200억 엔을 투자하기로 하는 등 구체 계획을 수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국내 소재기업들의 적극 대응 필요한 시점
앞에서 보았듯이 일본 소재 기업들이나 서구 기업들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이들 기업이디지털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다양한 사업모델 개발을 통해 시장 지위를 확고히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국내 화학기업들은 디지털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사업 개척에 주로 관심이 있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업 자체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 미온적으로대응하고 있다.
중국/중동의 저가 공세를 피해 고부가가치화에 주력하고자 하는 국내 소재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일수록 고객과의 관계 및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대한 신속한 대응 등이 중요하므로 디지털 혁신에 의한 사업 방식 변화의 폭이 클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범용화학 기업들도 IoT,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안전성 강화 및 생산 비용 절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디지털화의 핵심은 방대한 데이터의 축적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경쟁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초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주도권 자체를 빼앗길 수 있다. 지금 일본 기업이나 서구 기업들의 성과가 미비하게 보이겠지만 구체 성과가 나온 시점에는대응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서구 기업들은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데이터를 적극 수집, 축적하고 있다.
국내 화학기업들이 뒤늦게 대응한다면 선제 대응한 기업들 이상의 큰 폭의 변화나 노력이필요할 수 있다. 한편, 이해 관계자들 간 초기 협력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필요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고려할 때 유사업종 기업들이 모여 보유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은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질 정보를 수집, 관리하기 위해 일본이나미국은 정부 주도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주축이 되어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협력체를 구성하고 있다. 초기 정부 주도로 진행하면서 다양한 참여자들의 참여를 유도한 후 점차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초기 정부가 주도할 경우 협력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가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하여 적절한 커버넌스를 수립해야만 협력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