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분노까지 신경 써야 하는 세상 신용경제 기자입력2018-07-02 17:12:23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한 여름 출근길 지하철. 옴짝달싹 못하는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공간을 확보해보지만, 옆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수는 없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그만 탔으면, 제발’을마음속으로 외쳐보아도 지각을 피해 온몸을 날리는 사람들 탓에 지하철은 순식간에 지옥철이 되고 만다. 지하철 안은 짜증스러움으로 가득하지만, 서로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기꺼이 몸을 움츠려 공간을 배려한다.
어느 무더운 여름 아침 필자가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적막하고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밀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였기에 돌아보니 어떤 중년 여성이 앞에 서 있는 여학생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몸을 움직일 공간은 거의 없었다.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았을 때 여학생이 사람들을 밀치고 내리려 하진 않았고 그냥 가만히 서 있던 것 같았다. 종종 지하철에서 있는 일이려니 하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 ‘말이 말 같지 않아?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한결 높아진 여성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그때까지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학생이 입을 열었다. ‘제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그런데 왜 반말이세요?’ 학생의 반응에 여성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욕을 하던 여성이 다짜고짜 학생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린것이다. 주변 사람들 모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여성은 버릇이 없다며 학생에게 계속 욕을 했다.
주변에서 점차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지하철인데요. 지금 처음 보는 아줌마가 저 머리 때렸거든요.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금 계속 욕하시는데요’ 학생이 신고한 것이다.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춘 여성은 출입문 쪽으로 움직였다. 지하철이 정차하자 여성은 허둥지둥 내렸다. 학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줌마 어디 가세요. 경찰 온다니까 여기 있으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다음 역에서 내렸고 도망치는 여성을 쫓아가는 학생의 모습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루를 시작하려고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과 맞닥뜨리게 된다. 유쾌한 일도 있고 불쾌한 일도 있다. 뜻하지 않게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일도 있지만, 무던히 넘어가야 할 일도 있다.
하지만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보다 상황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화를 내고 화가 화를 불러 급기야 폭력 행사도 불사한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화를 내고 문제를제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합당한 이유를 상실한 분노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격앙된감정은 단지 자신의 분노를 분출하고 해결하려는 목적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은 그 분노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주어지는 자극에 비해서 과도하게 분노를 느끼고 표출하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분노조절의 문제와도 관련될 수 있다. 합리적인 사고가배제된 채 중립적인 자극도 분노 유발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운전 중에도 빈번히 발생한다.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보복 운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복 운전은 상대 차량의 차선 바꾸기, 경적울리기, 서행 등을 이유로 화가 난 운전자가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 차량을 쫓아가 폭력을 행사하여 발생한다. 지난 6월 부산에서는 음주 운전을 하던 트럭 기사가 신호대기로 앞에 정차하고 있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는데 사과를 하기는 커녕 피해 차량의 남성이 차에서 내려 대화를 시도하자 트럭을 후진시켜 고의로 세 차례에 걸쳐 앞차에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승용차 안에는 여성과 한 살, 두 살의 어린 자녀가 타고 있었고 트럭 운전자의 충돌에 놀란 남편은 트럭을 저지하려 차량에 매달리고 맨주먹으로 잠겨있는트럭 창문을 내리치기도 했다.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편의 모습과 차량안에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아이들을 보호하던 아내의 모습은 처절했다. 이제는 거리를 다니며 남의 분노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
쉽게 분노하는 사람들과의 조우는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의도치 않게 이유없는 분노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이성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말을 하든지 적대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같이 흥분하여 말싸움을 이어나가는 것은 상대를 더 분노케하여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혼자 대응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사람이 있는 경우 누군가 쉽게 나서지 못할 수 있으므로 특정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다. 위 사례의 여학생처럼 싸움의 초기에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살다보면 가끔 그럴만한 일이 아닌데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순식간에 부정적인감정이 온 마음을 휩쓸어 버린다.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때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내 감정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의 분노를 잘 간수하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 본문의 사례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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