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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조용 로봇을 되짚어 보다 세계 제조용 로봇을 되짚어 보다 김재호 기자입력2012-02-24 00:00:00

A History of the Industrial Robot

세계 제조용 로봇을 되짚어 보다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패러다임을 파악하는데 있어 역사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로봇 시장을 연 1등공신인 제조용 로봇 역시 마찬가지이다. 산업혁명 이래 제조용 로봇이 현장에 적용된 이래 시장을 열기까지 무수한 로봇제조사들이 일익을 담당했고, 또한 스러져 가며 지금껏 제조용 로봇의 패러다임을 써내려 왔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변천사를 한 눈에 살펴보며 지금의 글로벌 로봇 메이커들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제조용 로봇에 대한 보다 풍부한 지식을 습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Chapter1.  서양 로봇 기업의 조상을 살펴보다

제조용 로봇, 지능을 갖게 되다
1886년 미국의 ‘Herman Hollerith’는 로봇기술을 지금처럼 발전시키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 천공기계를 소개한다. 카드가 와이어브러쉬로 구멍을 뚫어 놓은 금속표면을 통과하면 전기회로를 차단하는 이 기계는 IBM 컴퓨터 회사의 기초가 됐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컴퓨터의 발전은 계속됐다. 공공분야에 사용된 최초의 전기적 컴퓨터 ENIAC이 개발되어 초당 1백 개의 작업을 수행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벨 연구소에서 1948년 개발한 소형화된 트렌지스터가 구성요소로 사용되고, 이것은 1970년대 초반 제조용 로봇의 두뇌로 자리 잡게 된다.

 

제조용 로봇의 조상 NC머신
기술적인 측면에서 제조용 로봇의 기원을 찾아보자면 1950년의 유압식 NC머신을 들 수 있다. 스웨덴의 ‘J. Parson’이 1951년 MIT에서 진보된 NC를 선보였고, 이는 기술적으로도 큰 약진이라 할 수 있다. 이 기기는 숫자로만 프로그램 됐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작업으로 인한 리셋은 간편해지고, 보다 복잡한 형태의 작업을 기계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태초의 로봇 기업 Unimation
제조용 로봇의 시초를 논함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1956년 ‘Lasse Dencik’의 사교 파티에서 일어났다. 이 칵테일 파티에는 엔지니어이자 혁신가였던 ‘George Devol’이 있었다. 이미 그는 이 칵테일 파티가 열리기 2년 전에 ‘Programmed Transfer Article’이란 이름의 기기에 특허를 적용했었으나 그 자신조차 이 기계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파티의 또 다른 손님인 산업계 엔지니어 ‘Joseph Engelberger’는 Devol과 함께 Unimation이라는 회사를 설립, 이는 곧 Unimation Robot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제조용 로봇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Unimation의 1961년형 유압식 플로토 타입 로봇은 성공적이었으며, 최초의 제조용 로봇이 뉴저지 트렌튼에 있는 GM 공장의 다이캐스팅 기기를 위해 설치됐다. 이후 제조용 로봇은 점차적으로 진보를 거듭했다. Ford의 ‘Del Harder’는 자신의 공장에 2,000대의 로봇을 설치하기를 원했고, 제조용 로봇산업의 능률 향상을 위해 Unimation 로봇의 설계를 놋쇠로 모방, 다른 회사들에게도 구입 문의를 했다. 이 사건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로봇산업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후 1969년 Unimation은 GM의 차체용접을 위해 26개의 로봇으로 구성된 최초의 대형 로봇 용접라인을 구축한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로봇공장들은 소유권이 바뀌었고, Unimation 역시 Vicarm을 구매해 소형로봇 시스템에 대한 생산을 보완했으며, 1980년에는 Scheinmann이 Unimation를 떠나 새로운 로봇회사인 Automatix를 세웠다. 이 와중에 1974년 Cincinnati Milacron은 마이크로 컴퓨터로 제어되는 로봇 T3을 선보였다.


이들은 밀링, 드릴링, 쓰레드 커팅 현장의 로봇을 위한 작업 방법을 개선했고, Unimation 로봇을 사용했던 VOLVO는 T3이 공개된 후 많은 양의 Cincinnati Milacron 로봇을 설치하게 된다. 노르웨이의 회사인 Trallfa는 외바퀴 손수레를 제작한 후 이를 페인팅할 새로운 기기가 필요했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해 인력을 채용하기 힘들었던 만큼 그들은 새로운 도장 기기의 도입에 주력했다. 1964년 ‘Ole Molaug’는 현장에 설치된 Unimation 로봇을 신문기사로 보고, Trallfa에게 스프레이 페인팅을 위한 저렴한 로봇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그들은 곧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1966년 최초로 ‘Ole’라 이름 붙은 전기/유압 로봇을 개발했다. 이후 1967년 기회를 잡은 Ole는 성공적인 테스트 과정을 거쳐 스프레이 페인팅 공장의 로봇 수요를 크게 증가시켰다.

 

  스웨덴의 Asea “IRB로 세계의 이목을 끌다”
1962년 처음으로 발전된 형태의 다기능 기기가 완성되고부터 2년 후 Asea는 유럽에서 NC기기와 우수한 생산기술의 가장 큰 커스터머로 성장했다. 그들은 NC 컨트롤 시스템을 상용화했으며, 이 중 일부는 로봇 컨트롤러로 발전하게 됐다. Asea는 1969년에 처음으로 Unimation 로봇을 설치했고, 1972년 25대의 Unimation 로봇이 Asea의 다이캐스팅 주조소에서 활약했다.


이후 로봇을 개발하는데 주력한 Asea는 개발기획 매니저인 ‘Bjorn weichbrodt’의 활약으로 1973년 2월 드디어 첫 번째 전기로 구동하는 모델의 로봇을 선보였다. ‘IRB 6’라 명명된 가반하중 6kg의 이 로봇은 1974년 1월 최초로 Asea 자체 공장에 적용됐고, 이어 스웨덴 남부의 Magnusson에 팔려 현장에서 적용됐다. 이 회사를 운영하는 Leif Jonsson은 꾸준히 로봇을 위한 주변 시스템을 체계화해 1975년 세계에서 최초로 24시간 가동되는 무인공장을 만들었다. Jonsson이 구입한 첫 번째 제조용 로봇은 Asea에서 100주년을 기념으로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다시 사들이기까지 무려 10년 간 꾸준히 활약했다.


IRB 6은 완벽하지 않지만 물건을 잡거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곡선을 따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상의 장점보다 아크용접, 디버링과 같은 공정 어플리케이션 부분에서 더욱 뛰어난 모습을 보여 세일즈면에서 강한 경쟁력이 됐고, 세계의 이목을 끄는 제조용 로봇 모델로 자리매김 했으며, IRB 6는 성공적으로 제조용 로봇 시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Asea가 IRB 6을 미국에 선보였을 때 그들은 제조용 로봇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실질적인 요구를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로봇을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았기에 Asea는 타 로봇제조사들과 함께 어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80년대 초 Unimation에서 센서를 갖춘, 이른바 ‘Seeing Robot’를 소개해 큰 이슈를 이끌었고, Asea는 1983년 ‘IRB 90’이라는 센서를 지닌 로봇을 개발했다.


1970년대 Asea 로봇의 또 다른 전환점은 1978년 소개된 최초의 적응 로봇이다. 서버 컴퓨터와의 통신이 가능한 이 로봇은 CIM을 향한 개발의 시작이었으며 이로 인해 제조에 있어 컴퓨터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됐다. 이어 Asea는 후속모델인 IRB 60을 소개했다. 많은 이들이 전기 구동 방식의 드라이브 시스템으로는 이와 같은 대형 로봇을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이 로봇은 보란 듯이 성공해 1991년까지 Asea의 로봇 라인업에서 활약했다. 


  장인의 나라 독일, 로봇계의 장인 기업 KUKA Robotics의 탄생
스칸디나비아가 원동력의 중심에 위치했던 유럽의 경우 제조용 로봇에 대한 인식의 개혁이 늦었다. 유럽의 은행들은 일본과 달리 거대 기업의 형태가 아니었고, 그만큼 로봇기업들이 자금을 확보할 루트가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에 대한 인식 개혁이 늦어진 이유는 노동력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큰 규모로 공장이 지어져 로봇의 소형화에 대한 수요가 없었고, 이는 대부분 소형 제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유럽 산업 구조와 맞물려 로봇의 수요층 부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도에 유럽에서 로봇 산업에 출사표를 던진 기업이 있었다. 바로 KUKA였다.
KUKA는 제조용 로봇과 함께 용접 라인을 구성했으며, 이후 스폿용접을 위한 자신들만의 로봇을 제작해 1983년까지 1,200대의 로봇 판매고를 올린다. 물론 이중 대부분이 자동차 산업에 사용되었고, 1980년대가 지난 후 조립 로봇에 투자하게 된다.

 

Chapter2.  유럽, 미국 등 제조용 로봇 시조국에 출사표 던진 일본

  일본 ‘로봇 에도막부’ 거쳐 ‘로봇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의 산업은 1960년대 초기 자동화된 조립 작업과 함께 시작됐으며, 이후 자동차 산업의 물결에 편승해 일본의 자동화 산업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스파크 플러그, 범퍼, 휠 등은 자동화 조립시스템을 용이하게 적용할 수 있었던 자동차 부품이었고, 이를 위해 제조용 로봇이라 불릴 만한 매니퓰레이터들이 등장했다. 이 매니퓰레이터들은 작업 현장의 생산량에서는 능률을, 자금적인 측면에서는 절감을 가져왔다. 이후 1960년대 말 일본에서는 제조용 로봇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기 시작했다. 1968년 가와사키가 Unimation의 로봇을 제조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가지게 된다. 로봇에 대한 열정이 높았던 일본은 빠른 속도로 로봇 기술에 적응했고, 그들은 새로운 시장을 갖게 됐다.


1960년대 말 가와사키, 나치-후지코시와 같은 일본의 1세대 로봇기업들로 인해 그들은 한해 12%라는 어마어마한 경제성장률을 이룩했다. 그들은 로봇을 활용해 빠른 시장 확대는 물론 유럽시장으로의 확장까지 이룩했다. 이후 미쓰비시의 대표가 회장을 담당하며 일본 제조용 로봇 협회(JIRA : Japan Industrial Robot Association)가 설립되고, 이어 야스카와, 화낙 등의 유명 메이커들의 활약으로 일본의 제조용 로봇 산업은 보다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JIRA는 이후 JARA(Japan Robot Association)로 이름을 바꿔 보다 폭 넓은 로봇을 포괄하게 된다.


1980년과 1988년을 비교하면 세계의 제조 현장에 적용된 로봇의 수는 무려 10배가 증가했고, 그 수가 256,000대에 달했으며, 그중 68%에 달하는 175,000대가 일본에 설치됐다. 물론 이 와중에도 무너진 로봇 회사들이 즐비했다. 1990년에 들어와서는 한 해 약 60,000대의 로봇이 생산됐으며, 그중 15,000대가 수출됐다. 로봇의 생산량은 점차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로봇제조사의 수는 줄어만 갔으며 결국 화낙, 야스카와, 가와사키, 나치-후지코시, 미쓰비시, 토요타, 후지, 마쯔시타 등 약 20개의 제조사가 살아남게 된다.


1991년 약 350,000대의 로봇을 사용했던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봇 국가가 됐다. 1992년 일본에서 1,000명의 노동자 당 16대 이상의 로봇이 배치됐고, 이는 1,000명 당 8대를 간신히 넘은 스웨덴 및 4대를 넘기지 못한 유럽과 미국의 상황과 대조적이었다.
이후 일본은 세계 로봇의 엘도라도라 불릴 정도로 해마다 수출량을 늘려갔으며,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꾸준한 성공을 이어갔고, 아울러 동남아시아의 수많은 나라까지 시장을 확장해갔다.

 

  자동차 산업과 함께한 일본 로봇 “글로벌 로봇기업 발판 마련”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분야로 꼽히는 자동차 산업은 일본 로봇 시장에 있어서도 큰 수요처였다. 1980년대 말 가와사키가 처음으로 14축을 제어할 수 있는 32비트 컨트롤 시스템을 사용해 로봇 동작의 정밀도를 높였다. 코비 스틸 역시 이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18축 동시 제어에 성공했다. 이러한 로봇 기술 발전의 저변에 위치한 것이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었다. 토요타, 닛산 등 자동차 기업들의 조립 라인에서 로봇들은 맹활약 하게 된다. 이후 단순하지만 가격경쟁력이 높은 아크용접 로봇이 출현해 일본 자동차 산업에 하나의 트렌드를 이룩한다. 마쯔시타, 다이헨, 화낙과 같은 몇몇 로봇제조사들이 이러한 타입에 투자를 했다.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대부분의 설비를 스폿용접으로 구성했고, 가와사키와 나치-후지코시, 화낙, 야스카와, 미쓰비시 등은 이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봇제조사였다.

 

  스카라 로봇 대두 “전기·전자 분야 로봇 조립 시대 열어”
1981년 Sankyo Seiki, Pentel, NEC는 새로운 개념의 조립로봇을 선보였다. 이 로봇이 바로 스카라(Selective Compliance Assembly Robot Arm) 타입의 로봇이다. 스카라 로봇은 기계뿐만이 아니라 전기·전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에 들어서는 대략 55,000여 대의 스카라 로봇 카테시안 로봇이 일본 제조 산업의 조립 라인에서 활약했다. 이후 미쓰비시가 아크용접을 위한 스카라 로봇을 개발하는 등 일본의 다른 회사들도 스카라 로봇의 생산을 시작한다. 이 밖에도 많은 일본의 로봇기업들은 자동차 산업과 전자 분야 외에도 팔레타이징과 핸들링을 위한 로봇을 생산했다. 1990년대 초 팔레타이징을 위한 AI(Artificial Intelligence) 프로그램이 개발돼 박스의 무게와 크기, 팔레트의 시작지점, 위치 등을 조정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검사 공정에서도 로봇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공간 측정, 완성된 차량의 도장 표면 검사, 회로판 및 전기제품의 검사 등에도 로봇이 사용됐다.

 

 

Chapter3.  유럽, 미국 진출 상승세 일본 “스승을 베고 검을 얻는다”

  제조용 로봇의 진화와 시조(始祖)의 몰락
1980년대 중반 로봇산업에 침체기가 찾아왔다. 이 침체기로 인해 로봇기업들 간의 커다란 지각변동이 생겼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로봇제조사가 있었는가 하면 시장 선도 기업들의 인수와 매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재정적 어려움을 않고 있었던 Unimation에는 여러 바이어들이 몰려들었다. 입찰자 중에는 Asea, Westinghouse, Litton, General Electric 등이 있었고, 결국 최고 입찰가를 제시한 Westinghouse가 1983년 Unimation을 인수하게 된다. 하지만 가격적인 메리트 때문에 유압 로봇을 고수하던 Westinghouse는 전기제어방식의 로봇으로 전환되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1986년 가와사키 역시 Unimation과 맺었던 공동연구협약을 파기했다. 가와사키 역시 Unimation이 지니고 있던 방향성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해 Westinghouse는 마침내 ‘PUMA 760’이라는 커다란 전기식 로봇을 선보였으나 이 마지막 도전 역시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결국 1983년 108,000,000달러에 팔렸던 Unimation은 지속적으로 가격이 하락해 1988년 5,000,000달러까지 곤두박질쳤고, 이를 스토브리가 인수하게 된다.

 

  미국 로봇의 빙하기와 Adept의 선전 
1989년 Prab 역시 미시간 카라마주에 있는 큰 제조용 로봇 공장을 폐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는 미국의 로봇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국은 많은 로봇제조사들이 너무 다양한 분야에 복잡하게 투자를 감행했었다. General Electric은 동시에 여러 조립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4개의 팔을 지닌 로봇을 만들었지만 복잡한 기구부의 특성 때문에 고장이 잦았다. 반면 제조용 로봇 분야에 강세를 보였던 유럽과 일본은 로봇이 간단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임을 증명했다.


또 다른 차이점으로는 제조용 로봇의 개발에 몰두한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실질적인 현장 경험이 적었다.
일본의 로봇기업이 엔지니어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던 것에 반해 미국의 기업들은 비즈니스맨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GM은 결국 본래의 산업 분야에 집중할 뜻을 밝혔고, 화낙과 협조 하에 GM 화낙이 설립된다. 한편으로 미국 시장에서 Unimation으로부터 남겨진 Adept Technology는 당시 성장세를 보였다. Adept Technology는 1983년에 설립되어 빠른 성장을 보였다. 당시 ‘AdeptOne’은 엄청난 성공을 했고, 그들의 V Robot Language와 VAL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로봇 소프트웨어로 평가받았다.

 

  위기 속에서 태어난 로봇 강자 ‘ABB’
일본 시장을 바라보던 Asea는 1982년 일본 고베에 Asea 로봇센터를 열었다. 고베에서 로봇을 생산하고 도쿄에 세일즈 사무실을 마련해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마쳤지만, 그들은 곧 일본이 외국계 신규 로봇기업에게 매우 폐쇄적인 시장임을 깨닫게 된다.
1987년 Asea는 그들의 생산을 스웨덴으로 옮기도록 결정한다. 일본의 로봇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상황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것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Asea는 스위스의 Brown Boveri와 1988년에 합병하게 되고, ABB라는 이름의 로봇 메이커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ABB는 1990년 Cincinnati Milacron의 로봇 부서를 인수하면서 미국 시장의 점유율을 높였고, 1991년에는 Graco Robotis를 인수해 Graco가 지닌 한국에서의 입지를 활용해 한국 도장로봇 분야에서도 단단하게 입지를 다졌다.

 

  유럽과 일본 강세 속 ‘제조용 로봇 춘추전국시대’는 진행 中
20세기인 지난 10년 간 유럽 시장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했던 로봇 메이커 ABB를 포함한 화낙, 가와사키, 야스카와, KUKA Robotics, Comau, 스토브리 등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특히 ABB는 화낙을 ‘강력한 도전자’로 평가했다. 화낙은 유럽의 다양한 GM 공장 및 영국의 새로운 Nissan 공장에서도 메인 공급자가 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하지만 화낙은 타사로부터의 각종 청구 및 고소 등으로 유럽 내에서 용접로봇을 위한 자체 회사를 설립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ABB는 유럽 시장을 지배했고, GM 화낙은 미국 시장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ABB Korea   www.ab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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